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담의 난 (문단 편집) == 전개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1f1735a1003461b867f3ff573ea23bf_1567994247682.png|width=100%]]}}} || || '''{{{#fbe673 대구 부인사 숭모전에 안치된 [[선덕여왕|{{{#FBE673 선덕여왕 }}}]] [[표준영정|{{{#FBE673 표준영정 }}}]][* [[2018년]]에 그려졌으며 [[대구시]] [[부인사]]에서 안치하였는데, 여기서는 실제 복식에 가깝도록 외관만을 그렸다.[[http://m.m-i.kr/news/articleView.html?idxno=408712|#]] 실제 선덕여왕의 용안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보물]] 제198호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일명 남산 감실부처로 불리는 불상이 선덕여왕을 본따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 >16년 봄 정월에 비담, 염종 등이 '''"[[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며 병사를 일으켜 모반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十六年春正月 毗曇廉宗等謂'''女主不能善理'''因謀叛擧兵不克. 《三國史記 卷第五 新羅本紀 第五》] >---- >[[삼국사기]] 신라본기中 [[선덕여왕]] 16년 기사 비담은 '[[성차별|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라는 논리를 펴 반란을 일으켰다. 비담과 염종이 경주 외곽의 요충지 [[명활성]]에 주둔하자 선덕여왕은 [[경주 월성|월성]]에 군영을 두어 열흘 가량의 공방전을 펼쳤다. 전투 중에 [[유성|월성에서 별이 떨어졌는데,]]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비담은 ''' '듣기로는 별이 떨어진 곳은 반드시 피가 흘릴 일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마땅히 [[선덕여왕|여주]]가 패배할 조짐이리라.' ''' [* 吾聞落星之下 必有流血 此殆女主敗績之兆也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김유신]] 열전》]고 외쳤다. 이에 사졸들의 함성이 땅을 뒤흔들 정도로 사기가 올랐다. 선덕여왕 또한 징조를 듣고 몹시 두려워하여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이에 김유신이 선덕여왕을 뵙기를 청하고 그를 위로해주며 말했다. >길흉({{{#blue,#3162c7 吉}}}{{{#red 凶}}})은 정해진 것이 아니며 사람이 부르는대로 오는 것입니다. 까닭에 {{{#blue,#3162c7 봉황이 날아들었음}}}에도 ([[주문왕|주 문왕]]이 이를 얻음으로) [[주왕|은 주왕]]은 망하였고, [[노나라#s-1]]는 {{{#blue,#3162c7 기린을 얻었으나}}} (이를 사냥함으로) 쇠해졌는데, [[양왕(상)|고종]]은 (부친의 제사를 지내는 도중) {{{#red 꿩이 울었음}}}에도 흥하였고, 정공은 {{{#red 용과의 싸움이 있었으나}}} (신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음으로) 오히려 창성했다고 합니다. 까닭에 덕은 요물을 이긴다는 것을 알수 있으니, 별의 변이는 두려워하기엔 지나친 일이니 바라건데 왕께서는 근심하지 말아주십시오.[* 吉凶無常 惟人所召 故紂以赤雀亡 魯以獲麟衰 高宗以雉雊興 鄭公以龍鬪昌 故知德勝於妖 則星辰變異 不足畏也 請王勿憂《三國史記》] >---- >삼국사기中 김유신 열전 김유신은 별이 떨어져서 이기고 진다는 이런 [[미신]]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일반 병사들의 믿음과 반란군의 선전을 역이용해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한 책략을 짜냈다. 바로 [[연(장난감)|연]]에 [[허수아비]]를 싣고 이를 불태워 올려, 어두운 밤하늘에 보기에 마치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에 오르는 것처럼 보이도록 연출하고, 다음 날 '어제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말을 반란군 군영 내에 퍼트리는 심리전을 감행하여 반란군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이어 백마를 잡아 제사를 지내며 다음과 같이 제문을 올렸다. >천도(天道)는 양이 강하고 음이 약하며, 인도(人道)는 군(君)이 높고 신(臣)이 낮은 법입니다. 혹여라도 이것이 바뀐다면 진실로 큰 어지러움이 닥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비담의 무리들이 신하임에도 군(君)을 꾀하고 스스로 아래에서 위를 범하려 하니, 이른바 난신(亂臣)이자 도적의 아들로서 사람과 신이 미워하는 바요, 하늘과 땅이 용서 못할 바입니다. 지금 만약 하늘이 무심하여 이와 같이 오히려 별의 괴이함을 왕성에 보이신것이라면 신(臣)은 의혹이 되어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오직 하늘의 위엄으로 백성의 바람을 좇아 선(善)을 선하게 악(惡)을 악하게 여기시어 신(神)으로써 부끄러움을 없게 하소서 [* 天道則陽剛而陰柔 人道則君尊而臣卑 苟或易之卽爲大亂 今毗曇等以臣而謀君 自下而犯上 此所謂亂臣賊子 人神所同疾 天地所不容 今天若無意於此 而反見星怪於王城 此臣之所疑惑而不喩者也 惟天之威 從人之欲 善善惡惡 無作神羞《三國史記 중 김유신 열전》] >---- >[[삼국사기]] 中 [[김유신]] 열전 이어 김유신은 비담의 반란군에게 들이닥쳤고, 비담은 이 전투에 패해 달아났다. 김유신은 비담을 쫒아가 목을 베고 [[연좌제|구족을 멸했다.]] 반란은 열흘 만에 진압되었지만, 이렇게 싸우던 와중이던 1월 8일 [[선덕여왕]]이 세상을 떠났고, [[태종 무열왕|김춘추]]와 [[김유신]] 세력의 후원 아래 [[진평왕]]의 막내 동생 국반 [[갈문왕]]의 딸인 승만이 [[진덕여왕]]으로 즉위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